때때로 동시대는 시대를 동시에 담는다
— 콘노 유키 (미술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가 표현한 바와 같이, 동시대란 미지하고 이상한 것으로써 현재를 공유하는 감각일지도 모른다[1]. 새로워 보이고 세련됨과 동시에, 몰랐던 과거나 숨긴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기회가 미술관을 벗어난 곳에서도 많아졌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함께 자리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신기해할 뿐만 아니라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몇십 년 전에 그려졌던 근미래마저 향수가 되는 시점에, 그 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가 애착을 느낀다. 원래 향수란, 그렇게 멀리서부터 지금 있는 곳으로 쳐들어와 풍기고, 현혹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앞뒤나 전과 후의 균형을 깨는 현기증이 아닌, 현혹은 나름의 평안함을 제공한다. 동시대를, 바꿔 말해 시대를 동시적으로 경험할 때, 우리는 때의 중복—앞과 뒤, 실체와 그림자의 교차, 이 둘 사이의 떨림과 겹침 속에 있다. 동시(同時)와 시대(時代)의 부분적 중복 속에서 시간(時間)은 때때로[2] 혼재적이다. 이 신축성을 가진 때(時)가 합치의 순간(=동시)을 만들기도, 더 기나긴 시간축(=시대)을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주, 근과거나 근미래, 어느 특정 역사 등에 향수를 종종 느낀다. 이때 우리가 지금 감각하는 향수란 분열적이지만, 균형을 유지한다. 정체 모르는 기시감과 평안함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특정 시대에 만연한 감성에 접근시킨다. 모호한 ‘언젠가’와 명확한 ‘그때 당시’를 같이 껴안는 향수는 공상과 과학의 접점을 형성해 나가면서 미술 작품으로 펼쳐진다. 한편으로는 떠올리는 상상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증주의적 접근이 있다. 둘의 상승 기세에 힘입어, 미래와 과거는 지금 출발하고 동시대적으로 그려지는데, 이제는 없는 것(상실)과 아직은 없는 것(도래)이 합쳐진 모습으로, 창작 행위를 통해서 추구된다. 《Sci-Fi Capsule》에 참여한 정수정, 얄루, 장회영에게 공상과 과학의 접점은 작품으로 어떻게 나타날까.
정수정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회화 작업에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배경과 어우러지거나 스며드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예컨대,(2024)에서 물에 빠지는 듯한 모습, (2024)에서 곤충을 비롯한 생명체가 나오는데, 구글에 떠돌고 있는 70년대 레트로 공상과학적 풍경을 가지고 온 것이다. 얄루는 그간 종(種)이 교차하는 ‘호모 폴리넬라’ 생태계를 미디어 설치 작업으로 선보여 왔다. 이전 전시에서 아기미역인간-아가씨 미역인간-할머니 미역인간의 서사를 담은 영상이[3] 이번 전시에서는 3D 프린터로 제작된 작업으로 소개된다. (2024)는 말하자면 변형의 변형인데, 물성을 동반한 제의적 구조물이 되어 기술과 인간, 고대 서사에 담긴 알레고리나 상징을 물신적으로 만드는 오늘날의 문화를 기린다. 장회영은 양자물리학을 자신의 작업활동의 근간에 삼아, 재료가 물성을, 물성이 물체를 만드는 과정에 주목하면서 만든 [4](2024)을 선보인다. 도자기를 손으로 용접한 금속은 종이 마쉐나 석고, 직물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들을 만나는데, 이때 만남은 찌그러뜨리거나 찢고 비틀고,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작업 방식에서 계획성에 우연성을 가져다준다.
세 작가의 작업은 이미지에 연루된 물성이나 촉각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이 표면에서 배경으로 빠지듯 또는 어우러지는 듯한 정수정의 회화, 혼종적 존재를—심지어, 원본 영상에서 촉각적이고 유동적인 이미지를 물성적으로 끄집어낸 얄루, 흙과 불의 만남을 통해서 계산과 우연성의 만남이 ‘형태’로 담기는 장회영. 이들의 작업에서 중요한 점은, 상상과 실증주의적 접근에서 막(veil)의 접촉면을 만드는 일에 있다. 팀 잉골드(Tim Ingold)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을 인용하면서 말하듯이, 막이란 외부와 내부에서 교차하면서 질감을 형성하는 것이다[5]. 세 작가의 작업을 보고, 우리는 미지가 먼 미래만 보는 것이 아니다. 간과되어 온 역사, 고대의 토속 신앙적 상징화 과정과 오늘날의 문화적 특성 상품화의 연결고리, 재료와 재료가 만나면서 지금 여기에서 생기는 형태와 물질에 관심을 가질 때, 작품은 ‘언젠가’와 ‘그때 당시’가 ‘동시대’에 아로새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혹자는 태고적 향수를 작업에서 읽어낼지도 모른다. 로제 카유아(Roger Caillois)는 형상이나 상징에서 벗어나, 예술가가 태고의 절대적 무명성을 존경한다고 설명한다[6]. 이와 비교했을 때, 정수정과 얄루, 그리고 장회영의 작업은 오히려 익명성을 파악하고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연과, 물체와, 재료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의미 부여와 의미 창출의 가능성을 들여다보았는지, 그런 흐름 속에 아로새겨진 관계를 세 작가의 작업이 짚어준다. 향수가 확실한 ‘그때 당시’와 모호한 ‘언젠가’ 사이에도 ‘어딘가’에 남는 것처럼,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익명성의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제목에 들어간 ‘캡슐’이란 영양을 공급하는 동시에, 담는 대상이 오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간의 흐름에 내맡겨진다. 더 나아가—먼 미래에 꺼내졌을 때,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영향 관계와 아카이빙(기록, 보관), 그리고 충격이 공존하는 시공간은 합의가 아닌 합치, 즉 중복의 공간이다. 시간이라는 개념마저 떨리는 때가 동시대 속에, 동시대 미술 속에 있다.
[1] ボリス·グロイス, 河村彩(訳), 『流れの中で: インターネット時代のアート』, 人文書院, 2021, p. 170 (Boris Groys, In the Flow, 2018, 일역본)
[2] ときはときどき
[3] 경기도 미술관에서 열린 얄루 개인전 《얄루, YALOO》에서 는 대형 영상 작업으로 소개된 바 있다.
[4] Nuggang이란, 장회영이 좌절이나 실패에서 나오는 한숨이나 숨을 내쉬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만든 한국어이다.
[5] ティム·インゴルド, 奥野克巳(訳), 『応答、しつづけよ。』, 亜紀書房, 2023, p. 232 (Tim Ingold, Correspondences, 2020, 일역본)
[6] ロジェ·カイヨワ, 山口三夫(訳), 『自然と美学: 形体·美·芸術』, 法政大学出版局, 1972, p. 91(Roger Caillois, Esthétique généralisée, 1962, 일역본)
installation shots from